서울 암사동 유적은 지금으로부터 약 6,000여년전에 우리의 조상인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집터 유적으로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밝혀진 신석기시대의 최대 집단취락지입니다.
이 유적은 동남쪽의 구릉에 신석기시대 다음 시대인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유적(無文土器遺蹟)과 인접되어 있어 두 시대의 문화가 접촉하는 양상을 알려주며, 또 농경문화 개시를 입증하여 주는 고고학적 자료도 발견되어 한국 선사문화의 추이를 밝히는데 있어 유일하고도 귀중한 유적입니다.
서울 암사동 유적은 1925년 을축년 홍수 때 한강변 모래언덕 지대가 심하게 패어져 수많은 빗살무늬토기 조각이 노출되면서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지임이 밝혀지기 시작하였습니다.
1967년에는 대학연합발굴단, 1968년에는 서울사대 조사팀, 1971∼1975년에는 국립중앙 박물관, 그리고 1983년에는 서울대 암사동 유적발굴단에 의한 대규모 조사로 수혈주거지군(竪穴住居址群)과 그 부속시설이 확인 되었고, 이후 계속된 발굴조사에 의해 많은 빗살무늬 토기와 석기는 물론 청동기·백제시대의 유물도 출토되었습니다.
1979년 7월 26일 사적 제 267호로 지정되었으며, 1981∼1988년까지 유적지 발굴조사를 시작으로 총면적 78,133㎡의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확대하였으며 9차에 걸친 복원공사로 신석기 시대 움집이 복원되고 원시생활전시관이 건립되었습니다. 또한 이용 시민들의 불편이 없도록 주차장, 산책로 등 편의시설을 완비하여 '88년 8월부터 개방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집터로써 암사동 유적은 제일 먼저 알려진 곳으로 이 유적의 연대는 방사성탄소 연대 측정법에 의해 기원전 4-3천년 경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신석기시대에는 거의 대부분 땅을 깊이 파고 움집을 견고하게 지어서 살았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신석기시대는 완전한 생산경제의 단계가 아니고 일부 수렵, 채집, 어로에 의존하는 경제단계였기 때문에 대형 저장 시설 보다는 대부분 간단한 제작시설을 만들어 사용하였습니다.
암사동 유적은 한강 주변에 위치한 유적으로 고기잡이를 중심으로 한 어로생활이 주 생계수단 이었습니다. 이것은 어망추, 작살 등 어로도구들이 출토되는 것으로 뒷받침되며, 화살촉의 발견으로 인근 야산에서 수렵을 했으리라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또 도토리, 갈판, 갈돌의 발견은 신석기인들의 주식량이 도토리였으며 보습, 돌낫 같은 농기구의 출토는 밭농사가 일부 행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